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후 종종 정체를 궁금해 했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독립예술영화를 보러 굳이 골목 안의, 언덕 위의, 혹은 건물 꼭대기층의 숨겨진 극장을 찾아내는 쪽이고, 두 번째는 그들이 스크린 앞에 앉을 수밖에 없도록 구미가 당기는 영화를 차려 두는 쪽입니다. 늘 전자에 속해 온 저는 물론 영사실이 아닌 좌석에서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이고요. 그러니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신조를 가진 제가 서울을 거슬러 특정한 영화관으로 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동력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부디 저와 비슷한 호기심을 품었던 객석의 사람들에게 이 글이 닿기를 바라면서 아트나인 박혜진 프로그래머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Q1. 간단한 자기소개와 극장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트나인과 엣나인필름의 박혜진입니다. 극장 사업부 팀장으로 아트나인에서는 프로그램 총괄, 구체적으로는 프로그램 기획과 홍보·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엣나인필름에서는 외화 수입 실무부터 한국 영화 배급작 결정, 그리고 배급과 마케팅 전반의 감독까지 맡고 있습니다.
Q2. 극장 프로그래머로서의 업무가 어떻게 되시나요? 극장 프로그래머라는 이름을 생소해 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영화관 프로그래머는 상영할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극장 차원에서 어떻게 홍보를 할지, 그리고 어떤 관객 이벤트를 곁들일지 고민하는 역할입니다. 또 최근 극장마다 개성 있는 기획전을 많이 열곤 하는데 이런 기획전의 구상부터 홍보·마케팅까지 담당합니다. 영화가 결정되면 상영에 필요한 자료를 모두 수급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일까지 책임지고 있습니다.
봄을 앞둔 극장가에 흥한 것이 나왔다.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파묘]가 개봉 한 달이 채 안되는 시점 9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올해 첫 천만 영화 탄생에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오스카 시즌을 맞은 해외예술영화 시장도 호황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프랑스 감독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가 9만 명,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가여운 것들]과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된 [패스트 라이브즈]가 각각 6만,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바튼 아카데미]도 3만 명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한국독립영화 관객수는 저조하다. 지난해 4만 명을 동원한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이후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작품은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과 임선애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세기말의 사랑]뿐이다. 하지만 오스카 시즌이 지난 이후의 봄은 전통적인 한국독립영화의 호시기다. 전년도의 영화제들을 통해 관객에게 먼저 공개되었던 화제의 작품들이 긴 겨울 동안 관객을 만날 새단장을 마치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독립영화의 히트작들인 [소셜 포비아], [한공주], [소공녀],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이 모두 봄에 개봉,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다. 2024년 봄을 기점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될, 꼭 만나기를 바라는 한국 독립영화들에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 지난 해 영화제를 통해 심사위원단과 관객들의 고른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을 추려 보았다.
영화를 자유롭게 보던 시절이 있었다.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새소리, 종소리, 시계의 초침 소리의 근원지는 알 수 없다. 첫 장면에는 텅 빈 선로 위를 걸터앉은 한 사람이 화면 바깥을 응시한다. 이따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복적인 사운드와 자그마한 움직임들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말해준다. 열차가 선로로 들어오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던 영화의 시초를 떠올려본다. 인물은 마치 “영화를 찍었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만 같다. 영화는 인물의 대사도 일절 없고 숏의 호흡도 길다. 불시에 들려오는 큰 소리들은 더욱이 숨을 죽이게 한다. 대사가 없음으로써 생기는 영화적 결기는 영화의 사운드에 기민하게 귀를 기울이게 한다. 영화는 우리를 관객의 위치로 데려다 놓은 뒤 스크린 앞에 모여드는 인물들의 모습에 동일시하도록 이끈다. 보는 사람(관객)과 보고 있는 것(스크린)의 관계는 “흐릿하고 강렬한” 언젠가의 기억을 연상케 한다. 스크린에는 군중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이어진다. 열차처럼 도착했다가 떠나는 이들의 여정이 퍽 낭만적이다. 시네마를 유유하는 네 명의 여행자들의 하루로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_조영은(관객기자단 인디즈)
[NOW SHOWING] 큐레이션 #3. 극장에서 쓰는 편지 상영일정: 2024.03.16~03.30 상영작: <당신으로부터> <영화편지> <유령극> <이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 <차가운 새들의 세계> 📽️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