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사랑하는 주인공을 담은 영화 중에서도 〈가가린〉을 가장 좋아한다. 최초의 우주 비행사의 이름을 딴, 한때는 영광스러웠지만 지금은 철거 위기에 놓인 공공주택단지 ‘가가린’을 지키려는 소년 ‘유리'의 이야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홀로 가가린에서 추운 겨울을 맞는 유리는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와중에 어렴풋이 최초의 우주 탐사견 ‘라이카’를 보게 된다. 이후 뒤늦게 유리를 찾으러 온 디아나를 유리에게로 인도하는 이 역시 라이카다.
차마 직접 나설 용기는 없었던 인간 대신 처음 우주로의 걸음을 내디딘 용감한 강아지는 자신을 홀로 내보낸 인간에게 오히려 무한한 우주를 선물했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세계를 궁금해하는 관객에게 화면 하나에 수많은 우주를 펼쳐 보이는 영화관 역시 ‘라이카'를 닮았다. 최초의 우주 탐사견을 기리는 의미를 담은 이 영화관이 이름만 들어도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나는 대학교에서 한국 디아스포라 영화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작성할 당시 연구 주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왜 한국 디아스포라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려고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무척 어려운 질문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어렵다. 나의 조부모가 어렸을 적 월남한 이북 출신 실향민이기 때문일까? 한국 디아스포라 영화가 촉발하는 번역과 언어의 문제에 지적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일까? 영상인류학 관점에서 한국 디아스포라 영화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연구와 비평을 통해 오늘날 이주와 이동의 문제에 대해 발화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실 모두 맞다. 하지만 이와 같이 말하는 나의 모습이 조금 거짓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내가 나를 꾸미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당사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내가 한국 디아스포라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 나 자신에게 제기하는 진정성의 문제가 있다. 이번 기회에 만나 추천하고자 하는 <프리 철수 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떤 죄책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런데 아마 후자의 감정은, 비록 크기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유통에 참여한 많은 사람의 마음과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철수 씨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어떻게 그의 죽음 이후의 세대에게 전달해야 할 것인가? 어떠한 프레임을 취하고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 이철수 씨를 재현해야 할 것인가? 결코 작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으리라 예상해 본다. >> 전문 보기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번쯤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꿈도 연애도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은구(이주승)는 마지막으로 죽음을 계획하기로 마음먹는다. 죽음만은 완벽히 계획대로 하고 싶은 은구는 바다를 배경으로 죽음을 맞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우연히 옛 친구 명준의 누나인 명희(이상희)를 만나게 되고, 은구의 차에 막무가내로 탑승한다. 은구는 계획대로 멋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배우 이주승이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다. <돛대>는 돛은 없고 돛대만 있는 배처럼 항해한다. 흔들리고, 방향을 알 수 없으며, 멀미에 괴로워 모조리 게워낸다. 하지만 영화의 매력이 거기에 있듯, 인생 또한 그러하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마침내 마주한 은구의 표정이 잊고 있던 것들을 일깨운다.
글쓴이_안민정(관객기자단 인디즈)
[NOW SHOWING] 큐레이션 #17. 뜨거운 안녕 상영일정: 2023.10.01-10.15 상영작: <지구별 방랑자>, <돛대>, <무브 포워드>, <바바리>, <열쇠의모든 것> 📽️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